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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읽기 번호: 128092   작성일자: 2018/01/05 14:53:10
제목 (배문호칼럼15)진보와 보수
작성자 배문호 (munho@lh.or.kr)
진보와 보수

배 문 호
(도시계획학 박사, LH 주거복지센터장)


  2017년 3월 10일, 박근혜대통령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파면되었다. 작년 9월 30일, 한겨레신문에 의해 40년 절친 최순실이란 비선실세가 폭로된 후 5개월간 차가운 겨울 노상에서, 광장에서, ‘보통사람들’이 참여한 촛불시위가 매주 토요일 진행되었다. 현직 대통령을 대상으로 헌법과 법률에 의해 진행된 탄핵은 21세기 한국판 명예혁명이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한국사회는 촛불시위를 주도하는 세력과 태극기를 들고 박근혜대통령의 탄핵을 무효라고 하는 세력 간의 시위가 마치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듯이 일반 국민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사람을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로 양분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그러나 하나의 이념형(Ideal Type)으로 구분할 수는 있다. 사회학에서는 ‘인간의 중간 회귀본능법칙’이라 해서 사람은 대체적으로 중간에 위치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고전인 ‘중용’에서도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말이 있지 않는가? 그러나 중도는 생각으로는 가능할지라도 실제로는 자리매김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에서 보수주의는 일견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 진보주의는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면, 우리가 일상의 신문, 방송에서 접하는 보수와 진보의 본질적 특징은 무엇인가 그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일반 국민들은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한 번 고민해보자!
 먼저 보수주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보수주의는 경험주의를 그 바탕으로 한다. 경험주의(empiricism)는 경험적 사실에 근거한 실증주의다. 경험적 사실은 허구가 아니고 사실(fact)을 바탕으로 한다. 경험적 사실은 역사, 전통, 관습, 관행들이 긴 시간을 거쳐서 축적된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역사에 눈을 감는 자는 미래들 내다볼 수 없다’고 한다. 8.15 해방, 한국전쟁, 4.19, 5.16, 6.29 등 현대사의 격변기를 몸소 겪은 6070세대들이 대부분이다. 둘째, 보수주의는 실제로 경험한 현실에 입각하여 정책을 입안하는 방법론적인 현실주의를 선호한다. 그러므로 정책적으로 점진주의를 지향한다. 보수반동이란 말은 잘못된 말이다. 보수주의자들의 개혁안은 먼저 철저한 현실인식의 바탕위에 개혁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개혁 주체들의 이해관계들 조정하면서 개혁의 여건마련에 힘쓴다. 일정한 동기부여를 통하여 모순을 시정해 나가는 점진주의가 보수주의이다. 셋째, 보수주의는 또한 실용주의다. 보수주의자들은 실생활에서 정책적 효과를 보면서 개선해 나가려고 한다. 실학의 실사구시 정신이다. 넷째, 보수주의는 도덕주의(Moralism)로 흐를 수밖에 없다. 보수주의자들은 악법도 법이다라며 준법정신, 정직, 성실 등을 강조한다. 국민들이 법을 잘 지키는 것이 법치주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법치주의 진정한 의미는 통치자가 헌법과 법률에 규정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체가 국민이 아니라 통치자인 것이다. 
  그러면 진보주의의 특징은 무엇인가? 첫째, 진보주의는 먼저 선험주의다. 경험에 앞서 차가운 머리와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이론을 구성하여 시행착오나 오류를 줄이려고 한다. 그래서 이들은 글쓰기, 말하기, 선전, 여론동원에 능숙하다. 둘째, 진보주의자들은 방법론적인 현실주의가 아닌 이상주의자들이 대부분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라. 적폐청산을 일시에 해야 한다고 외친다. 보수주의자들이 지혜와 경륜을 중시하는 데 비하여 진보주의자들은 지식을 중시한다. 제반 사회문제들을 밑뿌리부터, 일시에 개혁하려고 한다. 셋째, 진보주의는 명분주의다. 진보주의자들은 상대적으로 과격성과 급격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명분을 중시한다. 이들은 명분을 잃으면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넷째,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들이 도덕을 중시하는 데 비하여 수단을 중시하는 수단주의(Instrumentalism)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진실을 위장한 거짓말을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상이 사회학적 측면에서 본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특징들이다. 그러면 이들의 핵심가치는 무엇인가? 보수주의는 개인의 행위를 중시하며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치열한 경쟁, 생산성, 효율성, 성장,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반면 진보주의는 집단의 행위를 중시하며 평등, 법과 규제의 의한 통제, 분배, 복지를 지향하기 때문에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공무원들이 증가할 수밖에 없고 큰 정부를 지향한다. 
  한국에서 진보주의자들은 반기득권세력, 민주화세력, 친노동자세력, 젊은층을 지칭하고 보수주의자들은 반민중적 기득권세력, 친기업주의, 시장주의자를 가리키는바 상기 사회학적 이론과 차이가 있는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보수주의자들이 최근에 자주 언급하는 좌파는 급진개혁세력을 말하는바 현재 한국사회에서 그러한 좌파는 없다. 개혁도 헌법과 법률에서 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해야만 정당성을 갖는다. 이제 한국은 노동의 종말로 가는 저성장시대에 진입했다. 빠른 경기순환, 효율성을 지향하는 IT산업과 AI로 인하여 고실업시대에 살고 있다. 설사 경제가 성장한다 하더라도 실업은 해결되기 어렵다. 청년세대는 고학력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정규직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 사회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갈등은 보수와 진보를 이념적 바탕으로 하는 세대갈등이 기저에 있다. 세대갈등을 치유하고 포용적으로 나아갈 기존의 지도자들 보다 좀 진보적인 지도자가 현 시점에서 절실히 요구된다. 
                                                                〈201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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